"대담함, 책임감, 협력" - 구글이 경주에서 제시한 AI의 미래
2025년 10월 30일,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APEC CEO 서밋의 기조연설 무대에 구글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시몬 칸이 올랐습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기업 리더의 의견을 넘어, 글로벌 AI 질서에 대한 전략적 선언으로 평가됩니다. "AI 혁신은 대담해야 하되, 책임감 있게 추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는 미중 기술 경쟁 시대에 중견국들이 선택해야 할 방향성을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구글이 현재의 글로벌 정책 환경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프레임워크이며, 동시에 한국 정부의 "AI 이니셔티브"와 맞닿아 있는 공통의 비전입니다.
AI를 역사적 패러다임의 수준에서 재정의하다
시몬 칸은 경주에서의 발언을 인류 문명사의 거시적 맥락에서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AI의 확산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술의 점진적 진화가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에 이은 "세 번째의 거대 기술혁명"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표현이 가지는 함의는 명확합니다. 인터넷은 정보 접근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성했으며, 모바일 기술은 그러한 접근이 일어나는 물리적 지점 자체를 변혁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AI는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며, 창의적 활동을 수행하는 방식의 전면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구글의 CMO는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술 변화의 속도와 이를 규제하고자 하는 정책 체계 간의 괴리를 명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AI를 둘러싼 환경이 상당히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는 칩 설계부터 앱 개발, 심층 학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혁신적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발언은 기술 발전의 가속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규제 체계에 대한 구글의 우려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혁신의 가속화와 대담한 투자의 필요성
경주에서 구글이 가장 강조한 개념은 '대담함(Boldness)'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AI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이는 기술 선진국 및 정책 결정자들을 향한 명시적인 메시지였습니다. AI 발전을 과도한 규제 조치로 제약하는 것은 곧 경제 및 사회 발전의 기회 자체를 상실하게 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APEC 회원국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들 국가는 현재 AI 규제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거나 그 내용을 논의 중인 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글이 아태지역 CMO를 경주에 파견하여 직접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이 지역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구글의 입장이 반영되길 원한다는 의도로도 읽힙니다.
구글이 제시한 구체적 사례들은 '대담한 혁신'이 현실의 가치로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명증합니다. AlphaFold는 200만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해독해냈으며, 이는 전통적 방법으로는 수십 년이 소요되었을 연구를 AI가 수개월 만에 완성한 것입니다. 현재 이 기술은 신약 개발의 혁신적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재난 대비 AI 플랫폼인 Plod Hub는 홍수 예측 정확도를 혁신적으로 개선했으며, 이미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 Waymo는 자동차 산업 전체의 변혁을 가져올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혁신들은 대담한 투자와 기술적 모험이 전제되었을 때만 가능했던 성과들입니다.
책임감 있는 혁신의 실천적 의제
구글은 대담함만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칸 CMO는 중요한 정책적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AI 기술의 혜택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을 향상시키고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끌도록 하기 위해, 기업과 사회가 깊이 있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기술 발전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과정에서의 윤리적 고려가 필수적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글이 단순한 기술 추구 기업이 아니라, AI의 부작용 및 사회적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인식을 가진 기업임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기술 혁신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질서와 가치 체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공평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표현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식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에 관한 논의였습니다. 이 논의에서 왕양빈 보바일 CEO는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지적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창의성을 가진 인간은 AI를 '대체'의 도구가 아닌 '향상'을 위한 협업 수단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의 발언입니다. "기존의 라이브러리와 저작권을 충분히 존중함으로써만 AI 도구의 도움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만 산업의 성장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상적인 주장이 아닌, AI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실천적 필요성에 관한 분석입니다. AI 학습에 활용되는 데이터의 출처 투명성과 저작권 존중이 향후 AI 기술의 신뢰성과 수용성을 결정할 핵심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국제협력 체계의 재구축
칸 CMO 발언에서 가장 전략적인 함의를 지니는 부분은 '협력(Cooperation)'에 관한 대목입니다. 그는 "혁신과 책임감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협력을 전제할 때만 달성 가능하며, 국제사회의 공통 기준 마련을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구글이 제시하는 전략적 방향성입니다. 국제표준의 수립을 중심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구도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함의를 내포합니다. 첫째, 일방적인 기술 패권 추구보다는 국제적 표준 주도권의 확보가 더욱 지속가능한 전략이라는 인식입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양극 구조가 아닌 제3의 협력 체계 구축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셋째, 한국, 일본, 호주 등 중견국들의 역할 강화를 통한 다자주의 협력 메커니즘의 형성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경주 APEC의 무대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발표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공식 제시한 "AI 이니셔티브"는 정확히 이러한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APEC 회원국들이 미중 경쟁 속에서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AI 협력 체계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구글의 CMO 발언과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 만나는 지점은 결국 다자주의적 AI 거버넌스의 필요성이라는 공통의 인식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맥락 속에서의 메시지
이 발언이 가지는 또 다른 중요한 함의는 시간적 맥락입니다. 구글의 CMO가 이러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전 시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APEC에 국빈 자격으로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구글이 '대담함'을 강조한 것은 미국 내에서도 AI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차기 행정부가 AI 규제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한 구글의 선제적 입장 표명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이는 글로벌 정책 환경에서 AI 규제의 방향성에 관한 구글의 우려와 입장을 명확히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단순한 규제 완화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책임감 있는 혁신과 국제협력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함으로써, 무분별한 기술 추구가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옹호했습니다. 이는 규제 강화론과 규제 완화론 사이의 중도적 입장이 아니라, 더욱 정교한 국제협력 체계를 통한 문제 해결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아태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재확인
구글이 경주 APEC에 CMO를 직접 파견하여 기조연설을 하게 한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적 인식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APEC은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세계 GDP의 61%를 차지하는 거대한 경제권입니다.
이 지역의 정책 수립 과정에 구글이 직접 개입함으로써, 아태지역 국가들의 AI 규제 정책이 구글의 이익과 맞닿아 있도록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도 해석됩니다. 또한 이는 중견국들에 대한 구글의 전략적 투자가 얼마나 진지한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구글은 한국을 포함한 아태지역 국가들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평가됩니다.
결론: 경주에서 열린 AI 시대 협력의 새로운 장
경주 APEC에서 시몬 칸 CMO가 제시한 "대담함, 책임감, 협력"은 단순한 기업 리더의 수사(修辭)가 아닙니다. 이는 향후 글로벌 AI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전략적 선언입니다.
첫째, AI 혁신의 필요성은 필연적이며 그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이는 기술 규제의 방향성에 대한 구글의 명확한 입장입니다.
둘째, 기술 발전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입니다. 지식재산권 보호에서 사회적 배려에 이르기까지, 혁신이 기존의 가치 체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셋째, 미중 양극 구조를 넘어 국제표준과 협력에 기반한 다자주의적 AI 거버넌스의 구축입니다. 이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에게 새로운 역할과 기회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제시된 이 패러다임은 향후 글로벌 AI 정책 수립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AI 시대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가 제3의 협력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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